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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FBMKT/페이스북 가이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창업 비하인드 스토리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페이스북의 창업자라는 사실 외에는

잘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페이스북을 사용하면서 마크 주커버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마크 주커버그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출생과 성장 과정

 

 

 

 

마크 주커버그는 1984년 뉴욕 답스 페리에서 치과의사인 아버지와 심리학 박사인 어머니의 둘째이자 유일한 아들로  태어 났습니다.

총 3명의 여자형제를 둔 마크 주커버그는 어린 시절부터 다재다능한 아이였습니다.

그는 수학, 물리학 분야에서 상까지 받았으며, 특히 컴퓨터 분야에 대해서는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봤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나이의 마크 주커버그에게 아타리 BASIC 프로그래밍언어를 가르쳤고, 11살 때 마크 주커버그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데이비드 뉴먼 밑에서 개인 지도를 받으며 아버지 사무실에 직원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학창시절, 중학생이었던 마크 주커버그는 모노폴리나 로마제국을 주제로한 컴퓨터게임을 제작하였고, 고등학교 때 사용자의 음악 취향을

인식해주는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를 제작하였습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사와 AOL 같은 대기업으로부터 100만달러에 제작물을 구입하겠다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마크 주커버그는 웹에 무료로 자신이 개발한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를 개방하였습니다.

 

2. 페이스매쉬 (Facemash)

 

 

 

 

 

하버드 대학에 진학한 마크 주커버그는 입학 후, 먼저 코스매치라는 사이트를 제작하여 큰 인기를 얻습니다.

누가 어떤 수업을 듣는 지 한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이트였고, 그 이후 엄청난 사이트를 제작하여 큰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바로 페이스매쉬 라는 사이트인데, 기숙사의 모든 여학생들의 사진을 해킹하여 이상형 월드컵과 같은 플랫폼을 가진

사이트였습니다. 무려 하루에 23,000명이라는 엄청난 접속자 수를 보여주었습니다.

마크 주커버그의 뛰어난 아이디어와 사이트 구축 능력을 보여주는 큰 계기가 되었던 사례입니다.

(물론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대학으로부터 근신 처분을 받게 됩니다.)

 

 

3. 페이스북의 탄생

 

 

 

 

페이스매쉬 사건으로 마크 주커버그의 명성은 무척 높아졌습니다. 이에 관심을 갖은 윙클보스 형제는 마크 주커버그에게 '하버드 커넥트'를 제작하자고

제안했고 마크 주커버그는 이를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후에 페이스북의 플랫폼이 될 '더 페이스북 (The Facebook)'을 제작했습니다.

이미 코스매치나 페이스매쉬를 제작하며 얻은 코드와 기술적인 문제의 해결방안을 마련한 상태인지라, 마크 주커버그는 쉽게 만들어 냈고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처음에는 하버드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직접 사진과 프로필을 올리고 친구들과 공유하는 서비스로 제작하였는데, 오픈한 지

3주 만에 6,000명이 넘는 가입자와 타 학교 학생들의 이용 신청이 밀려왔습니다.

결국 2004년 2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페이스북은 3개월 만에 무려 10만명의 가입자 수를 받게 됩니다.

마크 주커버그는 이 때 과거 음악 서비스 사이트인 냅스터의 개발자 숀 파커에게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 후 둘은 캘리포니아의 팔로알토에서 의기투합을

하며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틉니다.

 

4. 페이스북의 성장

 

 

 

2004년 여름, 마크 주커버그는 숀 파커를 사장으로 영입합니다. 과거 숀 파커는 수십 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인터넷서비스를 만들었으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투자자들에 의해 회사에서 쫒겨났던 경험이 있습니다. 마크 주커버그는 그의 이러한 경험을 높게 평가하여

그를 사장으로 영입하고 숀 파커는 이를 수락합니다.

 

사장이 된 숀 파커는 마크 주커버그와 함께 페이스북을 더욱 성장 시켜, 2004년 9월 무려 20만명이 넘는 페이스북 가입자를 유치했습니다.

숀 파커는 그 당시 제일 인기있던 SNS인 링크드인의 창업자이자 투자자인 리드 호프만을 찾아갔으나, 링크드인과 경쟁관계가 있다고 여기

리드 호프만은 다른 투자자들을 소개해줍니다. 전문 투자자인 피터 피엘부터 WTI(West Texas Intermediate)의 투자까지 받게 됩니다.

특히 마크 주커버그는 숀파커의 투자원칙을 매우 높게 샀는데, 바로 투자자들에게 좌지우지 되지 않고 창업자가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받고 나서 투자를 받는 점이었습니다.

 

이 후, 엑셀 파트너스라는 거대 투자회사를 만나 1,270만 달러를 투자 받게 되었고, 마크 주커버그는 백만 장자가 됩니다.

풍부한 자금으로 마크 주커버그는 실리콘 밸리의 인재들을 속속 영입하였고 그 결과, 200년 12월, 페이스북 사용자는 300만명이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장인 숀 파커의 권유를 받아들여 대명사 'The'를 빼고 페이스북으로 바꿔 지금의 페이스북이 된 것 입니다.

 

5. 마크 주커버그의 가치관

 

 

페이스북의 직원들은 자유롭게 작업을 합니다. CEO인 마크 주커버그조차도 슬리퍼를 신고 근무를 할 정도로 회사 분위기가 자유롭습니다.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대학 시절에도 규정이나 법에 구애 받지 않고 오로지 코드를 짜는 데에만 몰두 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만이라도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 이라는 모토로 페이스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보와 자본의 소유, 지식의 독점을 누려왔던 기성세대와 달리, 마크 주커버그는 소통과 개방을 중시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가치관은 페이스북이 전세계 10억명이 넘는 사용자들을 유치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지려고 탐욕을 부리는 사람은 결국 아무 것도 갖지 못합니다.

2006년 야후가 마크 주커버그에게 10억 달러에 페이스북 인수를 제안했을 때도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의 페이스북이 있었을까요?

페이스북의 큰 성공 뒤에는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의 올바른 가치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봅니다.

 

 

 

페이스북 마케팅 코리아